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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지역 전설 이야기

용인의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by Park In Man 2025.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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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경 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산1-1, 고매로131번길 17-7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무덤 유적입니다. 이 묘역은 2003년 4월 21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도 전주최씨 평도공 종중이 소유·관리하고 있습니다.

최유경 선생의 묘
최유경 선생의 묘

최유경(崔有慶, 1343~ 1413)의 생거진천 사거용인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조선 개국공신으로, 한양성(숭례문) 축성 책임자이자 태종 때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묘는 자봉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방형 쌍분 양식(두 개의 무덤이 나란히 놓인 형태)으로 조선 초기 분묘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묘역에는 묘표, 상석, 향로석, 장명등, 동자석, 문인석 등 전통 석물이 배치되어 있고, 입구에는 영덕재(사당)와 신도비가 있습니다.

 

 그의 맏아들 최사위는 생전에는 진천에서 부친을 모셨고,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용인 자봉산 묘소 아래에 여막(廬幕, 초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부친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여 실제로 그 자리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다른 용인의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생거지처 사거용인
생거진처 사거용인

 옛날 충청북도 진천에 ‘추천석’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저승사자가 와서 그를 저승으로 데려갔는데, 염라대왕이 확인해보니 원래 데려와야 할 사람은 경기도 용인에 사는 같은 이름의 추천석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실수로 이름과 사주가 같은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실수를 깨닫고 진천 추천석을 이승으로 돌려보내라고 했으나, 이미 진천에서는 장례를 치러 시신이 매장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추천석의 영혼이 자신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방금 데려온 용인 추천석의 몸에 진천 추천석의 영혼이 들어가도록 했고, 그 결과 용인 추천석의 몸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가족들은 매우 기뻐했으나, 추천석은 자신이 진천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진천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진천 가족들도, 용인 가족들도 모두 혼란스러워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고을 원님(혹은 진천군수)에게까지 가서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님은 "살았을 때는 진천에서 살았으니, 죽어서는 용인에 묻히라"며,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론

 용인은 산세가 수려하고 풍수적으로 명당이 많아 묘를 쓰기 좋은 곳(사거용인)**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합니다. 실제로 용인은 한양과 가까워 조상 묘소를 쓰기에 인기가 높았고, 이런 풍토가 설화와 속담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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