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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군 강장모랭이의 물귀신 강장모랭이는 금산군의 강가에 위치한 귀통나무 주변을 일컫는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물이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곳으로,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역사적 내용 비 오는 어느 날, 금산 출신의 구암이라는 인물이 강장모랭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미끄러져 깊은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휩쓸린 그는 끝내 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마을 사람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익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마을에는 구암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흐린 날이나 밤에 강가를 지나는 사람들은 종종 구암이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하였고, 강장모랭이 근처에서는 풍물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마을 사람들은 구암의 혼이 아직도 강에 머물러 있다고 믿었.. 2025. 7. 7.
조령(鳥嶺, 문경새재) 성황당(城隍堂, 서낭당)의 이야기 조령(鳥嶺, 흔히 문경새재로도 불림)은 예로부터 한양과 영남을 잇는 중요한 고갯길로, 이곳에는 성황당과 관찰사(도 단위 최고 지방관)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특히 조령을 넘는 이들에게 요구되던 의식과, 이를 둘러싼 관찰사의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조령을 넘는 사람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고개에 있는 사당에 들러 절을 하고 재물을 내어 올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고개를 넘는 자 중 공양하지 않으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는 속설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경상도 관찰사가 이 풍습을 미신이라 여기고 이를 무시하며 사당에 들르지 않고 계속 길을 가자, 주변 관리들과 수행원들이 만류했으나 관찰사는 오히려 사당을 불태워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사당은 순식간에 불타 무너졌고, 관찰사는 "백성.. 2025. 7. 4.
용인의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최유경 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산1-1, 고매로131번길 17-7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무덤 유적입니다. 이 묘역은 2003년 4월 21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도 전주최씨 평도공 종중이 소유·관리하고 있습니다.최유경(崔有慶, 1343~ 1413)의 생거진천 사거용인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조선 개국공신으로, 한양성(숭례문) 축성 책임자이자 태종 때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묘는 자봉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방형 쌍분 양식(두 개의 무덤이 나란히 놓인 형태)으로 조선 초기 분묘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묘역에는 묘표, 상석, 향로석, 장명등, 동자석, 문인석 등 전통 석물이 배치되어 있고, 입구에는 영덕재(사당)와 신도비가.. 2025. 7. 2.
신풍초등학교 고목 설화(수원시) 수원 신풍초등학교(옛 산풍초등학교)에는 오랜 세월을 견딘 고목(잣나무 또는 은행나무)을 둘러싼 다양한 전설과괴담이 전해집니다.대표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무기 전설: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있던 고목을 베자 그 속에서 이무기가 튀어나왔고, 이 이무기를 죽였더니 이후로 학교에 각종 불운과 괴담이 이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이 고목은 원래 정조대왕의 사당인 화령전 뒤에 심어진 신성한 나무였다고 전해지며, 함부로 베어 화를 불렀다는 해석이 덧붙여집니다. 빗자루 귀신과 달걀귀신:고목에는 빗자루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있어, 비 오는 밤이면 빗자루를 들고 운동장을 돌아다닌다는 괴담이 학생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또한 변소 근처에서 얼굴이 하얗고 눈·코·입이 없는 달걀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학생들은 밤에 학.. 2025. 6. 19.
홍랑각시 설화(화성시)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에 전해 내려오는 홍랑아씨(홍랑각시) 이야기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희생과 영험의 전설입니다. 이 설화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명나라의 압박을 받던 시절, 한 여인의 고귀한 선택과 그 넋이 보살로 남게 된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이야기 내용 임진왜란이 끝난 뒤,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와 황제의 후궁으로 바칠 미녀를 요구합니다. “만약 처녀를 내놓지 않으면 마을을 폐촌시키고 삼족을 멸하겠다”는 위협에 마을은 공포에 휩싸입니다.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홍만석의 딸, 홍랑이 결국 공녀로 지목됩니다. 홍랑은 마을과 가족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결심합니다. 대신, 고향의 모래와 대추, 물을 서 말(한 되의 세 배)씩 가져가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명나라로 끌려간 홍랑은 황제의 후궁.. 2025. 6. 17.
남양 애기묘 이야기 (화성시) ‘남양 애기묘 이야기’는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괘랑3리에서 1980년 채록된 풍수 명당과 관련된 대표적인 설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술(풍수)에 뛰어난 한 전라도 사람이 부귀영화와 자손의 번영을 위해 전국을 돌며 명당을 찾다가, 경기도 남양의 ‘애기능’ 자리가 금계포란형(錦鷄抱卵形) 명당임을 알아보고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 했던 일화에 기반합니다.이 전라도 사람은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산소를 파헤쳐 시신의 목을 꺼내 궤짝에 담아 남양까지 밤낮없이 올라왔으나, 이미 애기능에는 다른 집안이 묘를 쓴 뒤였습니다. 그는 명당을 차지하지 못한 채, 근처에서 그저 ‘밥은 굶지 않을 만한’ 자리만을 찾아 아버지의 머리를 묻었습니다. 설화는 “땅에는 반드시 임자가 있다”는 교훈과, 지나친 명당 욕심이나 패륜적 행위.. 2025. 6. 11.
지네산의 산신(화성시) 지네산(덕목리 보금산이라고도 불림)은 왜적이 침입했을 때 주민들이 산으로 피신하여 싸우던 중, 위기에 몰리자 갑자기 산 아래에서 거대한 지네들이 나타나 독을 내뿜어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지네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마을을 지키는 산신이자 수호신의 성격을 가진 신령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주민들은 지네산에 산제를 지내며 이 산신의 보호를 기원해 왔습니다. 지네산 전설 옛날, 임진왜란 무렵 왜적이 육포(六浦)라는 포구를 통해 이 지역을 침입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급히 지네산 꼭대기로 피신했고, 산 아래에서 왜적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주민들은 산성처럼 돌을 쌓아 방어하고, 돌을 굴려가며 저항했지만, 적의 수가 많아 점점 밀리게 되었습니다.이때 갑자기 산 아래에서 엄청난 수의 지네들이 나타나.. 2025. 6. 10.
방아못 전설 (화성시)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귀래리에는 아주 특별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방아못 전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선행과 악행, 그리고 금기를 어긴 결과에 대한 깊은 교훈을 담고 있어 오랫동안 지역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습니다.인색한 부자와 따뜻한 며느리옛날 귀래리에는 마음씨가 몹시 인색한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시주를 청하러 찾아오자 부자는 스님의 표주박에 쇠똥을 퍼주며 모욕을 줍니다. 이 모습을 본 며느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표주박을 깨끗이 씻고 쌀을 담아 스님에게 건넸죠. 스님은 며느리의 선행에 감동을 받고, “이 집에는 곧 큰 재앙이 닥칠 테니 살고 싶으면 나를 따라오라.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일러줍니다. 금기를 어긴 며느리와 방아못.. 2025. 6. 9.
귀신을 쫓은 남이장군 이야기(화성시)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는 조선 전기의 명장 남이(南怡, 1441~1468) 장군의 묘가 있습니다. 남이 장군은 뛰어난 무공과 비범한 능력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억울하게 역모에 연루되어 27세의 젊은 나이에 참형을 당한 비운의 인물로, 그의 삶과 죽음에는 다양한 설화와 귀신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남이장군 설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귀신을 쫓아내 권람의 딸을 살린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이 설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권람의 딸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남이 장군은 우연히 하인이 이고 가는 보자기 위에 하얀 얼굴을 한 사악한 귀신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남이 장군은 이를 수상히 여겨 그 하인을 따라 권람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남이 장군이 처녀의 방에 들어가 .. 2025. 6. 8.
쌍봉산(雙峰山)의 전설(화성 시) 이 산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남쪽 지방 어느 산골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일삼던 마귀가 득실거리는 소굴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살고 있던 마귀할멈 하나가 마귀소굴에서는 마귀들끼리도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어 먹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해 그곳을 뛰쳐나왔다. 마귀할멈은 인심 좋고 먹을 것 많기로 소문난 한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마귀할멈은 가는 곳마다 못된 짓만 골라 했다. 부잣집 아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공연히 심술이 나 슬쩍 머리를 쓰다듬는척하곤 병을 주었다. 아이가 인사불성이 되어 자리에 눕자 부모는 무꾸리(무당에게 길흉을 점치는 일)를 하고 음식과 떡과 죽을 차려빌었다. 마귀할멈은 죽만 실컷 얻어먹고 아이는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한양으로 가는 길에 .. 2025. 6. 4.
고종의 대한제국 건설 과정과 그 한계 알아보기 고종의 대한제국 건설 과정과 그 한계 알아보기는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조선 말기에 추진한 근대화 시도와 그에 따른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주제입니다. 당시 고종은 외세의 압력과 내부의 혼란 속에서 자주적 국가 건설을 꿈꾸었으나 여러 한계와 장애물에 직면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종의 대한제국 건설 배경, 주요 정책, 그리고 그 한계점을 자세히 살펴보며 역사적 의미를 조명해 보겠습니다.대한제국 선포와 근대 국가 건설 의지고종은 1897년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선포하며 황제의 지위를 선언하였습니다. 이는 청나라의 쇠퇴와 일본, 러시아 등의 열강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상황에서 국가의 자주권을 강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황제 즉위는 외교적 위상을 높이고 내정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상징적.. 2025. 5. 30.
한일병합과 조선의 대응 그 정치적 교훈 알아보기 한일병합과 조선의 대응 그 정치적 교훈 알아보기는 일본의 한반도 강점 과정과 이에 맞선 조선의 대응 전략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그 속에서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정치적 교훈을 얻기 위한 글입니다.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며 식민 통치를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조선 내부와 외부의 다양한 대응과 그 결과는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일병합의 전개 과정과 조선의 대응, 그리고 그것이 남긴 정치적 교훈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한일병합과 조선의 대응 그 정치적 교훈 알아보기 - 한일병합의 역사적 배경한일병합은 19세기 말부터 일본이 조선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러일전쟁 승리 후 일본은 조선 내 영향력을 극대화했.. 202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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