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남쪽 지방 어느 산골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일삼던 마귀가 득실거리는 소굴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살고 있던 마귀할멈 하나가 마귀소굴에서는 마귀들끼리도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어 먹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해 그곳을 뛰쳐나왔다.
마귀할멈은 인심 좋고 먹을 것 많기로 소문난 한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마귀할멈은 가는 곳마다 못된 짓만 골라 했다. 부잣집 아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공연히 심술이 나 슬쩍 머리를 쓰다듬는척하곤 병을 주었다. 아이가 인사불성이 되어 자리에 눕자 부모는 무꾸리(무당에게 길흉을 점치는 일)를 하고 음식과 떡과 죽을 차려빌었다. 마귀할멈은 죽만 실컷 얻어먹고 아이는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한양으로 가는 길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자 하늘에서 마귀할멈에게 인간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지만 마귀할멈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마귀할멈은 인심 좋기로 소문난 조암이라는 곳에 이르자 힘이 들어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잠시 쉬려고 쌀자루를 내려놓고 있을 때 하늘은 착한 사람들이 해를 입을까봐 마귀할멈에게 마지막경고를 했다. 더 이상 올라가지 말고 서쪽으로 가면 바닷가 ‘참남기’란 곳에 배가 있을 터이니 섬에 들어가 마음을 고치라는 호령이었다.
“아니 내가 무슨 잘못으로 외로운 섬으로 쫓겨가야 합니까? 한양 길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그곳에 가서 나오지 않겠습니다.” 마귀할멈은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이번에도 하늘의 말을 거역했다.
그러자 하늘에선 호령이 내려졌다.
“거역한다면 할 수 없다. 이젠 끝장을 보자.”
하늘에 삽시간에 먹장구름이 모여들고 비바람이 불면서 뇌성번개와 벼락이 치더니 마귀할멈이 하늘로 끌려 올라가 목숨이 끊어졌다. 이때 마귀할멈이 내려놓은 두 개의 쌀자루는 산으로 변해 쌍봉산이 되었고, 봉우리 사이 골짜기는 마귀할멈이 쌀자루를 짊어졌던 멜빵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쌍봉산 전설의 자연 환경적 배경
쌍봉산은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있는 독특한 산세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쌍봉(雙峰) 구조는 마치 쌀자루 두 개를 멜빵으로 멘 모습이나 말안장처럼 가운데가 들어간 형태로 해석되어 전설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이 산은 마을과 가까운 낮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잣나무와 소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울창하게 자라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주변 평야와 마을, 그리고 멀리 서해까지도 조망할 수 있어 예로부터 지역의 중심 지형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쌍봉산의 역사적 사실
쌍봉산은 고려시대에는 쌍부현이 위치한 지역의 중심 산으로 기능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백산(잣나무산), 마안산(말안장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풍수지리적으로도 명당으로 여겨졌습니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에는 남쪽 봉우리에 만세꾼들이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역사적 장소로, 이후 쌍봉산은 지역 독립운동의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또한 쌍봉산은 우정읍, 장안면 등 여러 마을과 인접해 있어 주민들에게 친숙한 산이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신앙적·민속적 장소로 자리잡아왔습니다.
전설의 창작 동기
두 봉우리가 나란히 솟고 중앙이 들어간 쌍봉산의 특이한 산세는 마치 쌀자루를 멜빵으로 멘 모습처럼 보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거인인 마고할미나 마귀할멈과 같은 전설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신화적 존재들의 등장은 산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옛사람들의 상상력과, 산을 신성하게 여긴 민간 신앙이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쌍봉산 전설은 특이한 두 봉우리의 산세, 울창한 숲, 지역의 중심적 위치, 풍수 명당, 그리고 3·1운동 등 역사적 사건이 어우러진 자연환경과 지역사의 맥락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 모든 요소가 주민들의 상상력과 신앙, 공동체 기억 속에서 전설로 구체화된 것입니다.